카카오(舊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운영하는 포털 웹사이트이다.
본래는 예술사이트로 출발했지만 패션사이트, 커뮤니티 사이트, 영화 웹진 서비스, 여행 정보 서비스 한메일넷 등 각종 사업을 벌이다가 IMF 외환위기로 인한 침체기 때 무료 이메일 서비스로 대박을 터뜨렸고, 그후 검색 엔진 서비스와 뉴스 서비스 등을 대대적으로 도입하여 종합 포털사이트로 거듭났다. 네이버가 급부상하기 이전에는 야후 코리아, 라이코스 코리아와 함께 선두권에 있었지만 2003년을 기점으로 네이버에게 밀리기 시작하여 3위 포털사이트의 자리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포탈 사이트의 개념 자체는 이미 해외 서비스인 야후를 통해 먼저 알려져 있었지만, 한국 내 환경에 맞추어 이메일과 웹서핑 등 구색을 갖춘 것은 다음이 좀 더 앞섰다(야후의 한국 서비스 출범보다 2년여 정도). 1995년에 이재웅과 박건희, 이택경 3명이 인터넷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김에 자본금 5000만원을 모아서 회사를 차렸는데 사업 초기에는 버추얼 갤러리라고 해서 사진과 회화를 전시하거나 광주 비엔날레와 서울 국제만화 페스티벌을 생중계 하는 등 예술사이트였었고, 당대 온라인 상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하이텔이나 천리안, 나우누리같은 종합 PC통신 업체의 모습과는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러다가 외부 개발용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영화웹진 서비스를 만든다거나 패션이나 여행정보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사업을 하나하나 확장함으로써 포털사이트 다음의 모습이 조금씩 갖춰지기 시작했다.
1997년에 무료메일로 유명한 '한메일넷'을 오픈하고 검색서비스도 도입하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메일 개념이 없지는 않았지만 보통은 PC통신을 통해서 메일을 써야 했는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정액제가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PC통신 이용으로 돈이 적지 않게 나가던데다가 PC통신에서 제공하던 메일은 대부분 해당 PC통신사 내부용으로 이용하던 메일을 기반으로 확장한 것이라 본격적인 메일이라 하기에는 이래저래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호응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거대 포털사이트화가 진행되었고, 1998년 말에 회원수 100만명을 달성한 이후로 1999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 흔적으로 한동안 다음의 이메일 주소는 ID@hanmail.net이었다. 물론 지금도 저 주소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요즘은 ID@daum.net을 권장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시장이 벌어들이는 돈이 변변치 않은데 반해 사업투자비 때문에 운영비는 월등하게 많이 들어서 다음이 라이코스에 인수제의를 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라이코스 측에서 거절했다라는 카더라가 있다. 물론 그 이후로 라이코스가 다음에게 먹혔던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 실제로 독일계 언론재벌인 베텔스만의 도움으로 서버증설하고 포털사이트 사업을 해낼수 있었다는 후문이 있던걸 보면 사업자금 투자로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었던것은 사실인듯 하다. 여하튼 베텔스만은 2002년까지도 다음의 2대 주주였지만 2002년에 주식을 죄다 처분해서 현재는 별 관계가 없다. 이 당시에 심히 놀랍게도 네이버 검색엔진을 썼었다. 이때는 네이버가 본격적으로 포털사업을 벌였던 시절이 아닌 삼성 SDS산하의 기술벤처였던 시절이었기 때문.
여하튼 1990년대 말에 야후와 더불어서 수위권을 다투던 사이트였던데다가 IT버블 시기로 주가가 폭등하던 시기였기에 미래의 성장가능성이 높게 평가되어서 1999년 11월에 코스닥시장에 등록했을 때 26일 연속 상한가를 쳤던 기록이 있다. 당초 공모가는 1만 1200원으로 책정되었으나 거래가 거의 이루워지지 않음에도 40만원까지 주가가 폭등하는 기적이 일어났고, 최종적으로 54만원(무상증자 후에는 27만원)까지 치솟기도 했었다. 코스닥에 등록하는김에 전직원들에게 우리사주 식으로 일정 수준의 주식을 나눠준 덕택에 이 시기 한정으로 전직원이 수억원대의 자산을 가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다음의 주가도 동반 폭락하였고 현재까지도 10만원을 좀체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점유율 2위를 지키면서 다른 포털사이트들이 네이버에 밀려 몰락하는 것에 비하면 썩어도 준치는 준치였기에 코스닥 대장주로써의 위상은 지키기는 했다.
IT버블이 꺼졌다고 해도 매출액 자체는 급속히 늘었기에 2000년 하반기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이후로는 사업확장에 소극적인 야후 코리아를 뒤집고 포탈 사이트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왔으며 2002년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3년부터 '네이버 지식iN' 덕분에 네이버가 급성장하면서 Daum은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돼 시장 점유율 2위로 내려 앉았고, 그 이후로도 네이버와 다음의 격차가 벌어지며 카카오와 합해도 매출액이 두배 이상의 격차가 벌어지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다음 카페도 먼저 런칭했지만 이후 네이버 카페에게 추월당해 버렸고 과거의 영광으로 먹고사는 수준. 또 다음 블로그와는 별개로 티스토리를 서비스한다.
의외로 구글과 인연이 깊었다. 2003년에 검색기능을 강화시킬려고 구글과 제휴관계를 맺었고 그 이후로 2009년까지 웹문서 검색결과를 구글에서 제공받았으며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구글에게 광고외주를 준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제휴관계가 생각보다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바람에 2009년을 전후하여 제휴관계가 종료되었고 제갈길을 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인연때문에 증권가에서 구글이 다음을 인수할 것이라는 썰이 파다하게 돌았는데 결국에는 카카오와 통합하는길(혹은 인수되는 길)을 선택하면서 다음이 구글에 인수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카카오에 여러 서비스들이 통폐합당한 것을 보면, 차라리 구글과 합병했을 때 구글 지도+다음 지도나 tv팟+유튜브 등의 조합으로 잘 먹고 잘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08년-2010년을 전후하여 점유율도 다소 반등하고 이에 따라 주가도 급등하면서 1999년~2000년 버블시대의 아성에 다시 도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점유율이 답보상태에 놓였고. 이후 2014년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승부수로 카카오톡을 운영 중인 카카오와의 합병을 발표했다.
similarweb에 따르면 구글한테 밀려 2018년 2월 3위이다. 그러나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이 제공하는 조사 결과에 따르면 PC 도메인별 웹사이트 순위에서 네이버에 이은 2위이다. 이처럼 조사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는 각 조사업체마다 PC를 기준으로 하느냐 모바일을 기준으로 하느냐, 점유율을 기준으로 삼느냐 방문자수를 기준으로 삼느냐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카오가 다음카카오에서 카카오로 사명을 변경하면서부터는 카카오 브랜드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다음의 서비스를 카카오로 이전하거나 카카오의 이름으로 새로 내놓는 서비스의 완성도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럴거면 뭐하러 합병한 것이냐라는 평이 자자하며, 실제 합병하면서 카카오측에서나 다음측에서나 다음과 카카오가 병합하면 광고수입이 크게 늘어날줄 알았는데 정작 합병하고 나서도 광고수입이나 점유율은 별로 늘지 않고 답보 상태에 놓였던지라 카카오 내에서도 그 동안 카카오 브랜드에 집착하느라고 헛삽질이나 한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돈다. 이때문에 카카오 뱅크와 픽코마 대박 소식 이전까지 카카오 내 분위기가 영 거시기 했다는 후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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