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년 4월 28일 ~ 1993년 2월 20일)에 의해 설립된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생산 기업이다. 페라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포츠카, 슈퍼카를 제작하는 회사이다. 회사의 철칙은 "페라리보다 빠른 차를 만들자." 이다.
람보르기니의 차량 성향은 원래는 그랜드 투어러를 지향했으며, 페라리와 마찬가지로 베이비 람보르기니인 V10엔진의 모델들과 쿤타치만 퓨어스포츠를 지향했었다. 창업주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이미 페라리에 크게 데였기 때문에 튼튼하고 편안한 GT카를 좋아했다는 것과, 람보르기니의 치프 엔지니어인 파올로 스탄차니(Paolo Stanzani)조차도 '양산용 시판 로드카는 절대로 레이싱카의 흉내를 내어선 안된다'라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에 철저히 입각하여 차량을 설계, 개발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것은 창업 초기의 이야기고, 미우라와 쿤타치로 큰 재미를 본 람보르기니는 퓨어 스포츠카 라인업을 점점 확대하기 시작해 현재는 우루스 같은 몇몇 차량을 제외하고 아벤타도르나 우라칸 같은 주력 모델은 명백한 퓨어 스포츠카이다. 미드십 구조에 트렁크도 좁은 데다 차랑 높이도 매우 낮은 편이고, 특히 상위급에서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와 아벤타도르를 비교하면 슈퍼패스트가 훨씬 GT카에 가깝다. F1 같은 레이싱 분야가 아닌 공도 주행용 차량에서는 람보르기니는 퓨어 스포츠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애초부터 우루스 빼고 현재 판매중인 GT 계열 차량이 없는데 GT카를 지향한다는 거 자체가 궤변이다..
특유의 미래지향적이고 남성적인 직선 위주의 날카로운 디자인으로 유명하며, 쿤타치에서 시작된 이 디자인큐는 람보르기니가 아우디에 매각되면서 많이 희석되었다가 레벤톤부터 다시 채용해 2011년 출시한 아벤타도르에 이르러서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요즘은 항공기를 본딴 디자인을 채용하는 데에 재미를 붙인 듯하다. 디자인큐가 굉장히 유니크하기 때문에 악세서리류들 또한 인기가 많다.
페라리에 비해 판매 대수도 적고 역대 모델 수도 상당히 적은 편이다. 현재에도 페라리의 생산 모델은 8기통 엔진을 탑재한 엔트리 모델 488 GTB와 그 파생형 모델들인 488 스파이더, 컨버터블 GT인 페라리 포르토피노, 4인승 슈팅브레이크인 12기통 슈팅브레이크 GTC 4 Lusso와 그것의 파생형 모델인 8기통 GTC Lusso T,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플래그쉽 GT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로 무려 7종류에 달하지만, 람보르기니는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플래그쉽인 아벤타도르S와 아벤타도르S 로드스터, 10기통 엔진을 탑재한 엔트리 모델 우라칸과 우라칸 스파이더, 우라칸 RWD, 우라칸 RWD 스파이더, 퍼포만테, 그리고 우루스 즉 차량 세종의 사양변경 모델만 있다. 페라리보다 판매 모델 수가 적고 모델 풀체인지 주기가 긴 대신 도중에 한 번씩 페라리는 거의 하지 않는 페이스리프트와 성능 향상을 거치기 때문에 퍼포먼스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 편이다.
2015년에 측정된 직원수는 1175명이며 그 뒤로도 더 많은 직원들을 채용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한해 판매량은 2014년 대비 28% 상승한 3245대를 판매하였다고 한다. 이는 우라칸과 아벤타도르의 판매호조 덕분인데, 우라칸은 2242대, 아벤타도르는 1003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매출은 전년대비 39%가 증가한 1조 1537억 원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1998년 폭스바겐 그룹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2018년 9월 폭스바겐 그룹이 람보르기니를 아우디 산하에서 포르쉐 산하로 이관시킨다는 뉴스가 나왔었다. 슈퍼카 플랫폼 개발을 포르쉐에서 일괄적으로 해서 람보르기니 부가티 등의 슈퍼카 제작사들의 비용 저감을 꾀한다는 이야기인데 2019년 12월 현재까지 아직 변동은 없다. 포르쉐에서 타이칸 등 전기차 개발에 신경쓰느라 당장에 조직을 개편할 여유는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포르쉐 산하로 들어가면서 생길 비용적인 이익을 생각하면 시간 문제일 뿐 언젠가는 이루어질 듯.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와 그의 작품들. 스포츠카는 하라마(Jarama) 모델이다.
창업주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 - 1993)이다. 그의 삶을 짧게 얘기해보자면 1916년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에서 포도농부 부부들 사이에서 태어 났다. 그리고 기술자들이 그랬듯이 어렸을때 부터 농업보다는 농기구와 기계들에 관심을 보였는데. 람보르기니의 부모들은 아들을 볼로냐의 기계학교로 보내 기계를 배우게 했고,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에 이탈리아 공군에 징집되어 로도스 섬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차량정비병으로 복무했다. 그리고 영국군 포로로 1년간 억류뒤 1946년도에 귀국을 하면서 자동차 정비소를 차렸고 1947년도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에게 부를 안겨다 줬던 트랙터 사업을 시작 했는데, 당시 마셜 플랜으로 인해 농업쪽에도 막대한 돈이 들어왔고 2차 대전이후 농업의 자동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 트랙터의 수요가 엄청났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까지 경작용 트랙터를 생산하는 일을 하며 산업왕국을 세웠다. 본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트랙터로 번 돈으로 고급차를 여러 대 구입해 몰고 다녔고, 이 중 페라리의 250GT가 있었다. 차 자체는 괜찮았으나 너무 시끄럽고 거칠어 트랙이 아닌 일반 도로나 비포장도로에서는 운행이 거의 불가능했으며, 무엇보다 클러치가 계속 오작동을 하는 것을 발견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차를 분해해보았고, 그 결과 람보르기니에서 생산하던 한낱 트랙터와 최고급 페라리에 사용한 클러치가 같은 제품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엔초 페라리(Enzo Ferrari 1898 - 1988)를 직접 만나 자신이 발견한 클러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페라리 본사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엔초 페라리를 만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였지만, 당시 모터스포츠에서 연승을 거두어 자만하던 엔초 페라리는 '웬 촌티나는 시골 사업가'가 자기 차의 결함을 지적하기 위해 온 것을 보고는 그의 면전에 대고 "댁같은 사람은 트랙터 모는 법이나 알면 됐고, 내 차는 당신 분수에 안 맞으니 나가라."는 투로 대꾸하고 그대로 내쫒았다고 한다. 가장 동경했던 자동차 회사의 회장에게 대놓고 운전도 못하는 촌놈 김여사 취급을 받는 이 심각한 모욕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불 같은 성격에 기름을 부었고 그 말에 화가 난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제대로된 스포츠카를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이후 1963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스포츠카 공장을 신설하고 첫 번째 차량 350GT를 생산했다. 1966년 람보르기니는 세계 최초의 슈퍼카라 할수있는 미우라를 발표했다. 이 차는 리어 미드십 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자동차였다. 본디 빠르기만 하고 실용적이지 않은 차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그였지만, 미우라의 성공으로 마음이 바뀌었는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미우라의 뒤를 이을 강력한 신차를 계획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 트랙터사업의 재정난과 석유파동으로 람보르기니는 휘청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경영에 흥미를 잃은 페루초는 회사를 스위스 사업가인 조르주 앙리 로세티에게 매각했고, 이후 람보르기니는 1978년 결국 파산하여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1980년에는 프랑스인 형제인 장 클로드 미므란과 파트릭 미므란의 손에, 1984년에는 미국의 크라이슬러 그룹에 매각되는 등 수난의 나날을 보낸다.
크라이슬러 아래에서 1990년 쿤타치의 후속작 디아블로가 발표되었고, 그 외에도 포뮬러 원에 진출하거나 닷지 바이퍼의 엔진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크라이슬러 밑에서 간간히 활동하다가 1994년에 크라이슬러로부터 인도네시아의 메가테크라는 회사에 매각되었다가 끝내 1998년 아우디에 인수되어 지금까지 아우디의 자회사로 남아있다.[아우디의]
LE3512라는 F1용 V12 3.5L 엔진을 개발해 1989년부터 1993년까지 포뮬러 1에 엔진 공급사로 참여하기도 했고 1990년에는 로터스에 이 엔진을 공급했다. 사실 1994년까지도 이 엔진에 람보르기니의 모회사인 크라이슬러의 배지를 달고 맥라렌 팀에 공급되었다. 레이스 성적은 처참하게도 람보르기니 엔진을 장착한 경주차들이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 현재 페라리는 F1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14] 반면 람보르기니는 F1에는 관심이 없다.
창업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 포도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이름이 들어간 포도주를 내놓기도 하면서 노후를 보내다가 이후 1993년 방송 녹화 도중 뇌경색으로 쓰러져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상당수의 모델명이 스페인의 투우 역사에 이름을 남긴 황소들의 이름이다. 나머지 이름들도 투우용 칼이나 유명 투우사의 이름. 대부분 투우와 관련된 이름들이다. 또한 작명센스를 보면 상당히 과격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의 이름을 짓는 편이다. "폭발적이다"라는 뜻의 레벤톤, "이기적이다"라는 뜻의 에고이스타, "독극물"을 뜻하는 베네노, "악마"라는 뜻의 디아블로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현역인 아벤타도르는 스페인어로 풍구를 뜻하는 단어라 처음으로 과격하지 않은 단어가 사용되었다.
또한 차량의 공식 이름에 붙는 LP는 Longitudinale Posteriore의 약자로 피스톤을 세로로 배치한 미드십 엔진(엔진룸이 운전석 뒤에 위치)이란 뜻이며, 마지막에 붙는 숫자는 구동방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LP700-4라는 공식 모델명은 미드십 세로 배치 엔진 + 최대 700마력 + 4WD라는 뜻이다. 가야르도나 우라칸에 가끔씩 나오는 2륜 모델은 당연히 4 대신 2가 붙는다.
창업자 페루치오의 아들 토니노가 대표로 있는 토니노 람보르기니에서 람보르기니의 엠블럼이 박힌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시계, 지갑, 가방 등 잡화와 자전거, 골프 등의 스포츠 용품, 그 외에 전자기기 등이 있는데 국내에선 그다지 인지도가 없다가 2012년 4월에 국내에 KT&G를 통해 담배를 공동 개발하면서 흡연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꽤 올라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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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하면 떠오르는 특징으로는 특유의 직선 위주의 공격적인 디자인과 함께 수직으로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시저 도어(Scissor doors)가 있다. 시저 시저!. 쿤타치에서 처음 쓰였지만 그로부터 30년 넘게 지난 지금 봐도 굉장히 충격적이고 신선한 방식이다. 단, 시저도어는 V12엔진을 탑재한 플래그십 모델(현재는 아벤타도르)에서만 쓰이고, V10 엔진을 탑재한 엔트리 모델(현재는 우라칸)에서는 그냥 일반 문을 쓴다. 무르시엘라고까지는 완전히 수직으로 올라가는 문이라 전복사고 시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아벤타도르부터는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처럼 약간 비스듬하게 열린다.
페라리는 최근의 FF를 제외한 모든 차량이 후륜구동이지만, 람보르기니는 대부분의 차량이 AWD이다. 페라리의 차량 대부분은 엔진을 차 앞에 두는 반면, 람보르기니는 미우라부터 지금까지 쭈욱 미드십 엔진 구조(MR)를 애용하고 있다. 따라서 트렁크가 앞에 있다. 물론 태생이 스포츠카인 람보르기니인지라 트렁크 용량은 없으면 허전하니 그냥 구색만 갖춰놓은 수준
또한 페라리는 수동변속기를 탑재한 차량이 많지만, 람보르기니는 패들 시프트 탑재 차량이 상대적으로 많다. 물론 수동변속기가 도태된 현재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전부 패들 시프트만 선택 가능하다. 따라서 패들 시프트를 제외한 나머지 기어 셀렉터는 버튼식이다. 재밌는 사실로, 페라리의 수동변속기 옵션이 있는 마지막 슈퍼카였던 599는 2011년에 단종되었는 데 비해, 람보르기니의 수동변속기 옵션이 있는 마지막 슈퍼카였던 가야르도는 훨씬 뒤인 2014년에 단종되었다.
엔진도 페라리의 엔트리 모델이 터보엔진을 쓰는 반면 람보는 아직 자연 흡기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실제로 공도에서 람보가 달리는 소리를 들으면 엔진음이 꽤 우렁차고 강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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